아시아 인권헌장, 또는 민중헌장은 1998년 5월 17일 광주에서 공포되었다. 헌장은 수백여 단체들과 개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아시아인권위원회가 전적으로 추진하였다. 헌장을 지지한 모든 단체이름은 헌장의 뒤 표지에 기재되어 있다.
아시아 인권헌장을 공포하는 일은 중대한 노력이었고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헌장의 주요 목적은 개발도상국내 인권증진의 장애물을 다루는 과정을 착수하는 것이었다.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개도국에 포함되어 있는 상황에서, 개도국들의 특수한 문제들을 다루고 명확하게 하는 하나의 예를 아시아가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선진국 밖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유용한 인권 담론을 만들어 간다는 명확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도가 왜 필요했을까? 선진 민주사회는 사법제도가 이미 상당히 성공적으로 발전되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녀의 권리 및 인권을 보호•증진시켜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인정하는 의회제도들, 법치주의의 주요원칙 하에서 작동하고 시민들의 권리보호 의무를 수용하는 경찰 등 법 집행 기관과 같은 사법 행정 제도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인권보호를 다룰 자체 원칙을 발전시켰던 검찰 및 사법 제도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도국이라는 나라들은 이러한 제도의 내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인권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할 수도 있으며,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및 사회•경제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같은 국제인권 규범들도 비준할 수 있다. 그러나 거버넌스의 전반적인 철학과 그 구성을 드러내는 원칙은 법치주의 원칙과 시민들의 인권 보호 의무를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이러한 대조적 상황 탓에, 선진국들은 몇몇 분야에서 상당한 정도 성공했고, 아시아 대부분 국가들은 그러한 성취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몇 가지 사례들이 이를 설명해 준다. 선진국에서는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 철폐가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러한 관행을 없애기 위해 제도적 안전장치들이 개발되어 왔다. 요컨대, 실질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관행은 선진국들에서 상당부분 과거지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선진국들이 그러한 기준들을 동일하게 이루어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선진국들이 이러한 원칙들을 적용함에 있어 어떤 개도국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루어냈다는 것뿐이다.
개도국에서 고문은 잔혹한 일상의 현실이다.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은 아시아 국가 대부분의 경찰서에서 여러 목적을 위해 빈번하게 발생하는 관행이다. 이러한 국가들의 현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사안의 심각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비사법적 처형, 강제실종 및 적법 절차 없이 이루어지는 생명 박탈의 여타 형태들과 관련해서도 동일한 대조적 양상이 성립된다. 하나의 단순한 사례가 대조적 상황의 심각성을 잘 드러낸다. 바로 이 순간, 필리핀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마약 판매 및 여타 중대범죄와 연루됐다고 추정되는 이들을 비사법적으로 처형하고 있다. 그 결과 이미 이 천 여명이 살해되었다. 적법한 절차 없이 체포된 사람들도 수 천명에 이른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으며, 필리핀 인구의 상당수가 대통령의 결정에 환호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이 시행되는 원인을 면밀히 살펴본다면, 법 집행기관, 검찰, 법원과 같은 기본적인 사법 기관들의 취약하여 민중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사법 기관이 약물남용과 조직적 범죄를 법치주의의 틀 내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인권이 민중들에게 현실적 가치가 되어야 한다면 개도국의 특수한 문제들이 다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이러한 대조적 상황은 설명해주고 있다. ‘현실적 가치’라는 어휘는 1998 년 채택된 아시아 헌장 또는 민중헌장 제정을 위한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
현실적 성취라 함은 인권이 법률서적이나 유엔 조약의 어휘나 단순한 성명서들로 한정되지 말아야 함을 의미했다. 이러한 권리들은 각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법률 메커니즘을 통해 성취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이는 법 집행기관들이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검찰은 그 누구에 의한 고문 및 잘못된 대우도 용인해서는 안되며, 판사들은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에 관한 유엔 조약의 규정들이 자국에서 존중될 수 있도록 확고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이러한 결과를 현실적으로 이루어낸 국가가 하나라도 있는지 물어보자. 일부 관할권에서 특정한 진보를 이루어낸 반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인권의 현실적 실현의 보장을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헌장 이후 지난 20 여 년 동안, AHRC 는 지속적으로 헌장의 목표들을 추구해 왔다. AHRC가 작성해 온 방대한 양의 문서들은 모든 아시아 국가에서 인권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경찰, 검찰 및 사법의 문제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아시아정부의 태도 모두 상세히 연구되었다. 해결방안을 부르짖는 중대한 제도적 문제가 있는 지역은 물론 세계의 관심을 이끌어낼 생각이었다.
많은 NGO 단체들이 불행히도 소위 인권사업의 일환으로 수행하고 있듯, 마치 프로젝트인양 아시아 헌장을 증진하는 일에 AHRC 는 가담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있어 아시아 헌장은 협의(狹義)의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기본적인 시민•정치적 권리의 부인(否認)을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심각한 인권침해를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 아시아 헌장은 절박했다. 이 헌장에서 우리는 시민•정치적 권리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였다. 시민•정치적 권리 없이 다른 권리들이 -그것이 경제, 환경 혹은 성별(性別)적 권리라도- 실제적으로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법(司法)을 위한 기능체제가 없고, 정부가 사법제도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어떤 권리도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아시아 헌장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시도에 있어서, 본디 제기되었던 질문이 다시 제기되어야 한다.
1. 아시아의 대부분 개도국들의 경찰제도는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에 왜 그토록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는가?
2. 검사, 재판관, 국회의원 그리고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왜 이 기본적 사안들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가?
3. 국제인권운동이 개도국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우리는 이러한 사안들과 가능한 해결책들을 어떻게 더 명확히 표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국제사회가 개도국을 향한 그들의 의무를 이행해 오지 않았다고 1998 년 당시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국제사회 담론들 대부분은 선진국에 존재한 권리보호의 기제들과 비슷한 기제가 개도국에서도 존재한다는 가정과 오해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바로 잡아야 할 심각한 오독(誤讀)이다.
이러한 점들이 아시아 헌장이 다루고자 했던 사안들이다. 이후 AHRC 가 헌장을 증진하려는 활동들이 지난 20 여 년 간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아시아 헌장을 재론하려는 이들이 이 중대한 작업을 무시하거나 폄하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 기초작업을 왜곡하려는 이는 누구든 인권활동과 아시아 민중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하찮은 목적과 근시안적 프로젝트들을 위해 아시아 헌장이 재론된다면, 그것은 자기 잇속을 챙기는 행위가 될 뿐, 아시아 국가들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최선의 과업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